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발리 섬 (문단 편집) == 역사 == 역사적으로 힌두교 왕국이 인도네시아에서 마지막으로 남아 있었기 때문에 인도네시아 내에서 힌두교의 본산지 역할을 맡게 되었다. [[17세기]] 이후로 9개의 나라로 분할되었다. 강력한 국가가 나타나지 못하던 상황 속에서도 발리섬에 이렇다할 향신료나 자원이 없었기 때문에 [[네덜란드]]는 처음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자바섬과 수마트라섬이 네덜란드의 영향력 아래에 들어갔을 때도 독립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제국주의의 시대가 열리자 네덜란드는 발리섬 일대의 왕국들을 하나하나 멸망시켰으며 결국 [[1908년]]에 네덜란드에 완전히 병합되게 되었다. 자세한 것은 [[인도네시아/역사#s-7.3]] 문서 참고. 그렇지만 발리 섬 일대의 국가들은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네덜란드에게 수십 년에 걸쳐 저항을 했고, 그 가운데 몇 번 네덜란드군을 물리치기도 했다. 특히 최후의 전쟁인 [[1906년]]과 [[1908년]]에 벌어진 고위 귀족의 집단 자결 의식 '푸푸탄'(puputan)은 네덜란드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그 덕택에 발리 문화가 네덜란드에도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되었다. 물론 현대의 인도네시아에서도 푸푸탄을 자랑스러운 역사로 가르친다. 발리가 관광지로 각광받게 된 것은 식민통치 시절인 [[1920년대]]부터로 [[1917년]] 대지진과 [[1918년]] [[스페인 독감]], [[1919년]] [[생쥐]] 창궐로 발리 민심이 흉흉해지자 주술이 유행했는데 네덜란드 당국에서 이를 전통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물론 이러한 전통문화를 보존했던 것은 발리인들과 인도네시아 독립운동가들을 분리시키려는 공작의 일환이었기도 했지만, 그와 별개로 세계적인 관광지로 명성을 떨치게 되었고, 많은 서양인들도 발리 섬에 살게 되었다. 그러나 상당수 발리인들이 하인이 되고, 서구인들이 발리인들이 알몸을 드러내는 것에 관심을 보이는 등 긍정적인 면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와중에 [[일본]]에 의해 점령당했고, 일본이 패망하자 해방되었다. 뒤이어 네덜란드의 재침공도 무찌르면서 완전히 독립을 하게 되었다. 인도네시아가 독립한 이후로 발리인들이 네덜란드 식민당국에 대대적으로 저항한 일은 자랑스러운 역사로 교육하게 되었다. 하지만 발리도 격동의 현대사를 겪었다. [[1965년]] [[수하르토]]의 [[쿠데타]]가 벌어졌고 이 과정에서 공산당원들이나 화교로 의심되거나 연계가 있는 사람들을 처형하는 대학살이 인도네시아 전역에서 벌어졌다. 발리도 같이 휩쓸려서 도민 10만 명 가량이 살상당했다. 비율로 따진다면 타 지역보다 크게 높은데 발리 섬이 친 [[수카르노]] 지역이었기 때문이다. 타 지역에서 우익정당과 이슬람 우파단체가 그 주축이었다면 발리에서 우익들의 사주를 받은 힌두교 사제들이 정화의식이라는 명목으로 친 수카르노계 인사들과 공산당원들에게 린치를 가했다. 이러한 대학살로 많은 도민들이 희생되었지만 현재까지도 진상규명은 요원하다. 정세가 안정된 [[1970년대]] 이후로 다시 관광지로 주목 받으면서 현재까지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